
서명: 라스트 젤리 샷
작가: 청예
출판사: 허블
이 책은 2023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소설이다. 이야기 속 배경은 23세기, '초지능'을 지닌 '인봇' 인간의 일을 대체하기 시작한 '월국'이다. 이 소설을 쓴 청예 작가는 '형사정책을 연구하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다가 직접 만든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매일 늦잠을 자지만 글만큼은 성실하게' 쓴다고. 성실함 역시나 대단한 힘이라 그런지 공모전 수상 이력이 화려하시다.
이야기는 아키스라는 소년과 그의 보호자가 심판장에 들어서며 시작한다. 이 심판은 인봇 연구가 갈라테아가 만든 인봇 3구가 '윤리강령'을 어겼기 때문에 회부되었다. 갈라테아는 자신의 인봇 삼 남매가 윤리강령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삼 남매 엑스, 데우스, 마키나의 사회화 실험 중 발생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심판으로 '윤리강령에 의거한 객관적 심판을 내리는 매우 공정하고 정의로운 도구'인 천칭이 판단하여 갈라테아의 인봇 연구가 자격 박탈과 인봇 삼 남매의 폐기가 결정된다.
(발췌) 인봇이란 휴머니오디 혹은 안드로이드, 그 두 가지를 포용하여 '로봇' 범주의 모든 개체 수준을 진작 뛰어넘은 초기기형 존재를 의미했다. 육체노동과 자원 발굴이라는 거창한 일부터 아침 샤워와 의상 코디 같은 사소한 일까지. 우리는 돈만 있다면 원하는 만큼 기계의 도움을 받았다.
'뭔가를 원해'라고 말하기 전에 '이것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묻는 존재. 그들의 차가운 영혼을 우리는 '초지능'이라고 불렀다. 인공지능의 진화를 연쇄적으로 실현했다는 시대의 명함이자 우리가 자랑스레 여기는 훈장이었다.
(발췌) "윤리강령 1조, 인봇은 사람의 통제가 가능해야 합니다. 2조, 인봇은 주입하지 않은 감정을 느껴선 안 됩니다. 3조, 스스로 자아를 생성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갈라테아의 인봇 3구는 골고루 어겼지요. 이는 사회에 위협이 되며 우리의 윤리를 교란하는 괴물을 만든 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발췌) "미리 말해둘게요. 당신들이 주장하는 그 가치중립성이란 건요, 날개 없는 말을 유니콘이라고 칭송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엉터리라고요."
작가님이 직접 제작하신 북트레일러 영상이라고 한다. 정말 다재다능하시다.
《오렌지와 빵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는데, 제목만큼이나 톡톡 튀는 듯한 놀라운 경험이었다. 왠지 이 작가님이라면 다른 소설들도 나를 놀랍게 할 것 같아서 출간작을 찾아서 세 권을 연달아 읽었다. 그 중 첫 번째가 《라스트 젤리 샷》이다.
인봇의 창조주인 갈라테아가 등장했을 때, 피그말리온의 갈라테아를 생각하고 '여기서는 갈라테아가 창조주네?' 하며 신선하다고 생각했는데, 아키스라는 이름이 나오는 걸 보면 폴리페모스와 삼각 관계 속 갈라테아인가 싶기도 하다. 그럼 폴로는 폴리페모스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 유래들이 궁금하군.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본래 연극에서 갑자기 등장해 사건을 간편하게 해결해버리는 장치를 말하는데, 여기에선 과감하고 파격적으로 오히려 사건을 만드는 요소라는 점도 재미있었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아키스에게 메일을 보낼 수도 있는데, 그런 점도 정말 기발했다. 내가 잘 지내주길 바라는 존재가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다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어 편지라 그런가 인삿말에 한국의 얼이 담겨 있다ㅋㅋㅋ